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31년 11월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 삼천포읍(三千浦邑)의 삼천포공립보통학교(三千浦公立普通學校) 6학년에 재학 중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다. 학생들은 무산아동에 대한 수업료 면제를 요구하며 시내에서 선전격문을 살포하고 동맹휴학에 동참했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구류 29일의 처분을 받았으며 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이후 소작농으로 생활하던 그는 1932년 삼천포농민조합(三千浦農民組合)의 소년부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학습하였다. 1933년 8월 하순부터 1934년 3월 말까지 삼천포읍에서 20여 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야학을 실시하였다. 1934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공장 직공‧토목 인부 등으로 노동에 종사했고, 1936년 10월 고향의 동창생에게 일제 타도와 신사회 건설을 역설하는 편지를 보냈다.
같은 해 12월부터 1937년까지 십여 차례에 걸쳐 양호원(梁鎬元) 등과 항일운동과 신사회 실현 방안 등을 협의했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38년 3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9년 8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조언비어(造言飛語)’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40년에는 일본 사세보(佐世保) 해군 시설부에 강제 징용되어 요시찰인으로 감시를 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부산지방법원 : 1939. 8. 30)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동아일보(東亞日報)(1931. 12. 18, 1939. 9. 3)
- 사상휘보(思想彙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9) 제18호 31~45면
- 일제하 사회운동사 자료총서(고려서림, 1992) 12권 235~394면
- 조선‧대만 요시찰인 약식명부(국가보훈처, 2016) 211면
- 한국공산주의운동사(김준엽・김창순, 1976) 1409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0권 229면
- 일제하 농민조합운동 연구(지수걸, 1993) 433~4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