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일제하 증산교(甑山敎)를 비롯한 종교는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특히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측면이 강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전라도 고부 출신의 유생 강일순(姜一淳)은 1901년 전주 모악산 아래에서 흠치교를 창도하였다. 이 종교의 주문에 ‘흠치흠치’라는 말이 있고,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이라고 되어 있어 ‘흠치교’ 혹은 ‘태을교’라고 불렀다.
김성술은 1920년 음력 8월중 태을교(흠치교) 신자가 되어 8인조에 소속되어 포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김성술은 그의 상위자(上位者)로부터 1924년 갑자세(甲子歲)에 교주 차경석이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고 제위(帝位)에 올라 일제의 통치로부터 독립시킬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에 그는 태을교 신자들이 모두 독립된 국가의 국민이 되고 그 자격에 따라 관직을 얻을 것을 굳게 믿었다. 이처럼 김성술을 비롯한 태을교 신자들은 민족독립을 위해 태을교 포교를 함에 일제 경찰은 그들을 체포하였다.
김성술은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1921년 5월 16일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安東支廳:1921.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