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경남 합천군(陜川郡) 삼가(三嘉)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합천 출신의 김상준(金相峻)과 윤규현(尹圭鉉)은 서울에서 고종 인산(因山)과 3ㆍ1운동에 참가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윤규현은 민족적 거사를 고향에서도 단행하기로 하고, 윤승현(尹承鉉)ㆍ허장(許鏘) 등과 함께 협의하였다. 이들은 삼가면(三嘉面) 등 각 면에 한필동(韓弼東)ㆍ허동규(許東奎)ㆍ한식동(韓湜東)ㆍ윤구현(尹求鉉) 등에게 계획을 알려, 3월 23일 삼가시장에 모이도록 하였다. 3월 23일이 되자 쌍백면(雙栢面)에서는 4,000여 명의 군중이 면사무소를 불태우고, 전주 2본을 끊어 통신을 차단시킨 뒤 삼가시장으로 행진했다. 가회면(佳會面)과 생비량면(生比良面) 등지에서도 군중이 속속 시장에 도착하여, 1만 2, 3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만세운동 주도자들은 오후 3시 정금당(正衿堂) 앞 광장에서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성토대회를 열었다. 김전의(金典醫)ㆍ정방철(鄭邦哲)ㆍ김달희(金達熙)ㆍ임종봉(林鐘鳳) 등이 일제의 침략상을 규탄하며 민족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마지막 연사인 임종봉의 강연이 절정에 달했을 때 갑자기 헌병이 총격을 가하였다. 임종봉이 총탄을 맞고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자, 분노한 군중은 군경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시위 군중은 도망가는 군경을 쫓아 곤봉과 낫을 들고 경찰주재소와 우편소로 돌진하였다. 이때 일본 군경이 총격을 가하여 13명이 순국하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날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박병규도 총탄을 맞고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332~335면
- 釜山慶南3ㆍ1運動史(3ㆍ1同志會, 1979) 491~494면
- 3ㆍ1運動時被殺者名簿(국가기록원 소장, 1953) 1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