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만제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논산군과 공주군을 접한 계룡산 아래에 사회단체가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1928년 1월 12일 용상청년회(龍上靑年會) 창립 준비위원회를 개최하여 창립 규약초안 및 의안 작성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 김만제는 일본에 건너가 신호중앙신학교(神戶中央神學校)에 입학하여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다. 당시 신호중앙신학교에는 한국인 학생으로 김만제를 비롯하여 김영창(金永昌) 등 5명이 재학하고 있었다. 김만제 등 민족의식이 깊은 학생들은 한국민족의 진실한 행복은 일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일제가 주장하는 내선일체(內鮮一體) 등의 정책으로 인해 한국인의 민족의식 및 독립정신이 상실되어 간다고 보았다.
또한 김만제 등을 비롯한 신학생들은 일제가 만주사변·중일전쟁 등 침략전쟁으로 국력이 쇠퇴하여 미국 등의 연합국이 승리할 것이며 이때가 우리민족이 독립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중앙신학교의 교정, 신문실, 기타의 장소에서 한국인 신학생의 집회 또는 친목회 등을 이용하여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활동을 하였다.
1941년 12월 일제가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그에 따른 재일 한인 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를 단행하였다. 그 해 12월 9일 민족주의 운동에 관여하고 있었던 김만제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취조를 받다가 1942년 4월 2일 병으로 석방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3집 1338-1340면
- 中外日報(1928. 1. 17)
- 昭和特高彈壓史(明石博隆외, 1975) 제7권 174-179면 305-3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