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경북 영일 출신으로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군사를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산남의진은 1906년 3월 경북 영천(永川)에서 정용기(鄭鏞基)가 조직한 의병 진영이다.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은 시종관 정환직(鄭煥直)은 아들 용기에게 의병을 일으키도록 명하였다. 정용기는 고향인 영천에서 이한구(李韓久)·손영각(孫永珏) 등을 규합하여 창의하였다. 의진에는 대장 정용기, 중군장 이한구, 참모장 손영각, 소모장 정순기(鄭純基), 도총장 이종곤(李鍾崑), 선봉장 홍구섭(洪龜燮), 후군장 서종락(徐鍾洛), 좌영장 이경구(李景久), 우영장 김태언(金太彦), 연습장 이규필(李圭弼), 도포장 백남신(白南信) 등이 포진하였다. 구회수는 영덕(盈德)·영해(寧海) 방면에서 의병 모집의 책임을 맡았다. 그는 참모장 손영각의 사위로, 1907년 9월 재편성된 제2대 대장 정환직 진용의 도총장 구한서(具漢書)의 종질(從姪)이었다. 구회수는 보현산(普賢山)과 동대산(東大山)의 중간 영일군 죽장(竹長)에 거주하면서 산남의진의 군사 모집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영천·영일·청송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日月山鄕誌(1967. 3. 1)
- 山南義陣遺史(1970) 16, 18면
- 山南倡義誌 下卷, 79~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