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이대교는 경북 예천 출신으로 일본 대판(大阪)에 건너가 보덕공학교(報德工學校)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우리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 때문에 민족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독립운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이대교는 1941년 9월부터 1942년 5월 사이에 같은 학우인 전영수(田永秀)로부터 “조선민중이 일본의 차별과 압박을 받아 비참한 환경에 있는 현황을 폭로하고, 이를 논란 비방하여 이들의 민족의식 유발 앙양에 노력하는 한편 조선민족 해방을 위하여 우리들 청년학생이 단결하고 급속히 조선독립을 달성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듣고 이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그후 이대교는 전영수 등과 30여 차례에 걸쳐 회합하여 독립운동을 추진할 중핵 모체로서 충성회(忠誠會)라는 민족주의적 단체를 결성하였다. 충성회를 중핵으로 징병제를 독립운동으로 전환시킬 것, 고향 후배들에게 시국문제와 사회문제를 강의하여 민족정신을 계몽시킬 것, 친일단체인 협화회와 청년단에 들어가 민족의식을 유발케 할 것, 미국 비행기가 내습할 때가 독립운동을 달성할 기회임을 인식할 것, 안중근과 같은 선열을 현창할 것, 조선 총독정치의 결함과 각종차별 문제를 폭로하여 항일적 민족감정을 앙양시킬 것, 비밀기록류의 기재는 경찰로부터 검거될 우려가 있음으로 극력 주의할 것 등의 내용으로 활동을 하였다.
이대교는 일본에서, 전영수는 국내에서 동지들을 규합하여 일제에 대항하는 전면적인 대중적 폭동을 발발시켜 독립을 달성하려고 하였다.
이같이 충성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대교는 1943년 2월 26일 일제에 검거되어, 그해 5월 14일 검사국에 송치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고 1944년 2월 옥고여독(獄苦餘毒)으로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3집 1368~137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3집 200~203면
- 昭和特高彈壓史(明石博隆, 1976) 제8권 149~15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