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당시 서울의 중앙고보에 재학 중이었던 윤익중은 3월 1일 독립선언문 선포식과 만세시위에 참가했다. 이후 독립선언문 100여 매를 가지고 충청남도 홍성군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10여 일 간의 준비 끝에 장곡면 각 동리마다 조직책을 꾸려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4월 4일 밤 화계, 광성, 신풍리 등의 주민 100여 명은 매봉산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것을 시작으로 항일운동은 점차 격렬해졌다. 4월 7일에는 약 500여 명이 장곡면 도산리의 면사무소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면사무소의 기물을 파손했다. 이 시위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이에 무장한 일본 군경은 총격으로 무력진압하려 했지만 시위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저항했다. 결국 200여 명의 주민들이 일본 경찰에 압송됐다. 김수문은 이러한 장곡면에서 있었던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됐다.
김수문은 1919년 4월 18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 60도를 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3권 134면
- 3.1운동기념비(기미삼일운동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 199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