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61999
성명
한자 高仕萬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07 훈격 애족장
1931년 신재홍(申才弘) 등과 함께 제주도(濟州道)에서 혁명적 농민조합의 결성을 위해 활동하였고, 1932년 1월에 있었던 제주(濟州) 해녀(海女)들의 항일운동(抗日運動) 배후자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고 (約) 1년 10개월(個月)옥고(獄苦)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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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제주도에서 해녀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고사만은 1927년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혁명적 농민조합 결성을 위해 활동했다. 1930년 그는 문도배(文道培)·신재홍(申才弘) 등과 혁우동맹(革友同盟)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한 후 농민부·청년부·소년부·여성부를 편성하여 분야별로 계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사유재산제도와 일본제국주의를 부인하는 사회주의 선전에도 나섰다. 조선공산당 제주 야체이카 조직 등에 나선 고사만은 혁우동맹을 해소시키고 농민단체와 해녀조합 결성을 주도하였다. 이런 가운데 제주지역에서는 민족적 열기와 식민체제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어 갔다. 1931년 1월 제주에서는 해녀들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투쟁이 일어났다. 관제적인 해녀어업조합에 반대하고 있던 해녀들은 1천여 명의 시위대로 일경에 맞섰다. 이때 고사만은 해녀들의 항일운동 배후지도자로 지목되어 일경에 붙잡혀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재판이 지연되는 가운데 1년 10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조선일보(1932. 1. 26, 3. 4, 1933. 3. 4)
  • 동아일보(1932. 12. 11, 1933. 2. 6, 3. 3)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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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고사만 - 제주 1932년 해녀투쟁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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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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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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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애국선열 추모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2 사당 창열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3 기념관 제주항일 기념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4 제주해녀 항일운동 기념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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