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장흥경찰서(長興警察署)와 목포형무소(木浦刑務所)에 수감되어 있던 1928년 무렵,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소안도(所安島)에서 사회주의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신광희(申光熙) 등으로부터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모순 등에 대해 듣고 사상적 공감을 하게 되었다. 1929년 2월 21일 목포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여수읍 봉산리(鳳山里)에 있는 천일고무공장(天一護謨工場)에서 직공으로 일하던 1932년 여름경 문석(文錫) 등과 함께 여수적색노동조합(麗水赤色勞動組合)을 조직하려다가 발각되어 부산으로 도피하였다.
1933년 3월 부산에서 정수연(鄭壽演) 등과 함께 산업별 노동조합 건설을 목표로 ‘부산건설협의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그 기관지 『붉은 항(港)』 발간에 관계하는 등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장경렬(張敬烈) 등 동지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같은 해 7월 4일 부산지방법원(釜山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5년 1월 4일 형 집행 만기로 출옥하였다.
이후 여수로 돌아와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을 계속해서 모색하였다. 같은 해 6~7월경 박종구(朴鐘九)·황재열(黃宰列) 등을 교양하여 동지로 규합하였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오르그’를 조직하여 여수 내 각 공장으로 확대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박종구를 여수읍(麗水邑) 서정(西町)에 있는 무라사키철공소(村崎鐵工所)에, 황재열을 과거 자신이 근무했던 천일고무공장에 직공으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한편 하순철은 박종구를 비롯해 일본 유학생 박경임(朴景任)·김수평(金守枰)·이진문(李珍文) 등과 함께 그해 ‘8. 1 반전데이(反戰Day)’를 기하여 기념행사를 계획하였다. 8월 1일 당일은 경찰관의 특별경계가 있으므로 8월 12일로 날짜를 변경하고 준비를 진행하였다. 또한 그즈음 신문기사의 호외(號外)로 서울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교수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등이 관계한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재건운동 사건’이 보도되자, 같은 달 25일 여수향교(麗水鄕校)에 모여 향후의 전망과 대책 등에 대해 협의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당시 일제당국이 이른바 ‘조선팔경(朝鮮八景)’을 투표로 선정한 일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이를 반대하고 공격할 방법 등을 논의한 일로, ‘팔경투표(八景投票) 반대청년’이라며 주목을 받았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같은 해 9월 3일 여수경찰서에 체포되어, 12월 16일 박경임·김수평과 함께 검찰로 송치되었다. 1936년 2월 7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순천지청(順天支廳)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즉시 공소(控所)를 제기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0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오히려 징역 2년(미결통산 160일)을 선고받았다.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8년 2월 9일 형 집행 만기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1936. 2. 7)
- 판결문(대구복심법원:1936. 7. 20)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33. 7. 10)
- 매일신보(每日申報)(1935. 11. 26, 12. 19, 1936. 2. 5)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5. 11. 26, 12. 19, 1936. 2. 5,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