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경 북경 (北京) 으로 이주하여 이듬해 8월경 북경 (北京) 해전 (海甸) 에서 안창호 (安昌浩) 등과 함께 농장 (農場) 을 경영하며 아신의원 (亞新醫院) 을 열어 진료한 사실이 확인되며 1919년 3월 평북 (平北) 중강 (中江) 에서 만세운동 시위를 주도한 후 중국 (中國) 봉천성 (奉天省) 유하현 (柳河縣) 으로 망명한 후 대한독립단 (大韓獨立團) 에 참가하고 유격대 (遊擊隊) 를 교육시켜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하였으며 1926년경 남경 (南京) 국민정부 (國民政府) 의 북벌군 (北伐軍) 에 참여한 이후 산서성 (山西省) 대동 (大同) , 내몽골 하투 (河套) ·영하 (寧夏) 일대에서 국민당군 (國民黨軍) 에 소속되어 주로 군의관으로 참가하여 일본군 및 친일 (親日) 몽골군과의 전투에 참가하고 1944년 8월 이후 광복군 (光復軍) 초모 (招募) 활동을 하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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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19년 3월 1일 평북(平北) 중강(中江)에서 3.1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이후 중국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참가하고 유격대(遊擊隊)를 교육시켜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하였다. 1923년경에는 북경(北京)으로 이주하여 이듬해 8월경 북경 해전(海甸)에서 안창호(安昌浩) 등과 함께 농장(農場)을 경영하며 아신의원(亞新醫院)을 열고 진료활동을 전개하였다.
1926년경 남경(南京) 국민정부(國民政府)의 북벌군(北伐軍)에 참여한 이후 산서성(山西省) 대동(大同)과 내몽고(內蒙古) 하투(河套)·영하(寧夏) 일대에서 국민당군(國民黨軍)에 군의관으로 소속되어 일본군 및 친일(親日) 몽고군과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1944년 8월 임시정부 주석 김구로부터 공작 지령을 전달 받고 대한민국임시정부광복군주수원성초모처(大韓民國臨時政府光復軍駐綬遠省招募處)를 조직하고 광복군 초모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4권 322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6권 180·181면
- 독립운동사료 중국편(국가보훈처) 제13권
- 祖國이여 山河여(陳起燮, 1993) 142, 143, 153, 154면
- 興士團長 安昌浩 및 海甸農場에 關한 件(1924. 8. 2)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支那各地(3)
- 獨立新聞(1919. 9. 30, 1921. 4. 2·4. 9)
- 慈海自傳(李慈海, 1962年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