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옥석은 전남 장흥에서 청년운동 등 사회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192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과학을 연구하였다. 그러다가 1929년 7월 유재성(劉載星)과 함께 장흥청년동맹(長興靑年同盟)을 조직하고 간부로 활동하는 등 사회주의 성향의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김옥석은 1929년 4월경 장흥군 남상면(南上面) 보통학교 훈도(訓導) 김종선(金鍾善)으로부터 사회주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에 공명하였다. 그후 그해 8월 유재성·정진수(丁瑨壽) 등과 유재성의 집에서 회합하고, 김종선의 지도하에 사회주의사회 실현을 기하기 위하여 다수의 동지를 획득하고자 협의하였다.
이같이 김옥석 등은 전남 장흥에서 동지를 획득하기 위해 농촌 마을에 야학을 설치하고 농촌의 무산자 자제에 대하여 계급의식을 불어넣고 사회주의 사상을 주입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29년 10월 장흥군 남면 인암리의 신곡서당(新谷書堂)에서 신곡야학(新谷夜學)이라고 하는 야학을 개설하였다. 이 야학에서는 무산자의 자제 20명을 모집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가르치고 사회주의사회의 실현을 위한 교양사업을 하였다.
김옥석이 향리에서 야학을 통해 무산청년을 가르치고 있던 시기 일제는 1932년 12월 전남 장흥군 남면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청년동맹의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를 단행하였다. 일제는 김옥석을 비롯한 장흥청년동맹원인 정진수·류재성·문병곤(文秉坤)·이순주(李順柱) 등 13명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일제경찰은 왕재일(王在一) 등의 야학생을 검속하여 취조하는 등 6명을 검찰에 송치하였다.
1932년 12월 4일 일제 경찰에 체포된 김옥석 등은 12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 검사분국에 송치되었다. 그후 김옥석은 1933년 2월 14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長興支廳:1933. 2. 14)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朝鮮日報(1933. 2. 14·2. 18, 1934. 9. 7)
- 東亞日報(1932. 12. 11·12. 29)
- 刑事事件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