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전신묵은 전남 화순(和順) 출신으로 양회일의진(梁會一義陣)에 참가하여 능주(綾州)·화순(和順)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4월 말 양회일이 주도한 쌍산의소(雙山義所)는 능주의 관아와 일본군 주재소를 습격하였고, 이어서 화순의 관아와 분파소를 습격하였다. 이들의 목표는 우선 광주(光州)를 공격하여 전라도 지방에서 일본 세력을 몰아내고, 나아가 북상하여 서울의 일본 세력과 친일파를 축출함으로써 국권을 회복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쌍산의소의 의병들은 광주를 공격하기 위해 동복(同福)에서 진을 치고 있던 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았다. 이리하여 양회일을 비롯한 의병 6명이 체포되었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전신묵은 양회일의진의 기사(記事)로 참여하였는데, 특히 의술이 뛰어났다. 1907년 4월 22일 능주·화순 등지의 군아(郡衙)와 주재소 및 분파소를 공격하였는데, 전신묵은 병기전운사(兵器戰運使)로 참가하였다. 그 후 이백래부대(李伯來部隊)에서는 주의(主醫)로 활동하였다. 1912년 일제의 탄압으로 고초를 겪던 중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杏史實記(梁會龍, 1950) 卷4, 15면
- 全南暴徒史(警務課, 1907) 180~182면
- 皇城新聞(1907. 4. 2, 4. 30)
- 臨戰日錄(李容植, 1910)
- 綾州鄕校敬通(1946)
- 梁與林魯福倡義實記(林魯昌, 1946)
- 筆巖書院敬通(1946)
- 綾州鄕校誌(능주향교 민홍기, 1960) 卷2 27면
- 대한제국기 호남의병연구(홍영기, 2004) 2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