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최진은 평남 강서(江西)에 있는 기독교계 사립 창신(彰新)학교와 평북 영변 읍내 소재의 기독교계 사립 숭덕(崇德)학교 3학년 졸업 후, 1936년 3월, 평양의 기독교 경영 사립 숭실(崇實)중학교 4학년으로 편입학하였다. 1937년 11월 중순경, 재학 중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구호를 제창하여 퇴학을 당하였다.
1937년 12월 12일 최진은 서울 현저동의 복음교회에서 숭실중학교 퇴학 경위를 말하면서 예배당 내에 일본국기의 게양을 강요하고, 찬미가에서도 먼저 ‘기미가요’를 부르라고 강제하는 것은 기독교도에 대한 압박행위이며, 이는 곧 우리 민족에 대한 일본 정부의 압박이므로 자신은 한국인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는 연설을 하였다. 또한 12월 14일에는 수원군 수원읍 북수정 소재 예배당에서 “소금은 물질의 부패를 방지하고 사회에 필요한 것인데 우리 기독교도도 소금의 역할로써 한국인의 부패한 정신을 방지함과 동시에 그 각성을 촉구하고 또 비참한 현상에서 구출해야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한국인으로서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연했다가 1937년 12월 16일 수원경찰서에서 행정집행령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최진은 1938년 7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38년 12월 10일 출옥하였다. 출옥 후 활동을 계속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1944년 6월 1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해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45년 3월 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38. 5. 22)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별집 9권 321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基督敎徒의 保安法 陸軍刑法 등 違反事件 檢擧에 관한 件, 京高特秘 제1594호1938. 7. 8(국사편찬위원회) 思想에 관한 情報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