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대구(大邱)에서 대구청년동맹·신간회 대구지회의 간부로서 활동하였다. 유쾌동은 1929년 3월 13일, 신간회 대구지회 제3회 정기대회에서 간사에 선임되었고, 동년 4월 22일 대구청년동맹 제5회 집행위원회에 참여하였다. 집행위원회에서는 5월 1일 노동절 기념일을 맞아 강연, 시위행렬, 선전격문 배포, 간담회 등을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유쾌동은 기념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5월 17일에 열린 대구청년동맹 집행위원회에서 사업부 부원으로 선임되었고 8월 신간회 대구지회 집행위원회에서 선전부장에 선임되었다. 1930년 8월 28일, 유쾌동은 서항수(徐桓洙)와 함께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자 격문을 작성 배포하였다. 8월 29일, 경술년의 치욕을 잊지 말고 독립투쟁을 전개해 나가자는 의미에서, “이천만 동포들아! 경술년의 금일을 잊지 말고 끓어오르는 피의 기세를 떨쳐라. 잊지 말라. 해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격문을 작성하였고 서항수는 이를 거리 곳곳에 붙였다.
이 사건으로 유쾌동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30년 9월 3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31년 5월 30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30. 9. 30)
- 名籍表(大邱刑務所)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中外日報(1929. 3. 17, 4. 27, 5. 21, 8. 25, 1930. 9. 22)
- 執行指揮書(大邱地方法院檢事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