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본적은 경북 봉화(奉化)이며, 자(字)는 덕필(德弼) 호(號)는 일소(一笑) 또는 일주(一舟)이다. 김병련은 조부인 벽우(碧愚) 김규창(金奎昌)으로부터 한문을 수학하다가 봉화 조양학교 등에서 신학문을 익혔으며, 1919년 3·1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
김병련은 1919년 음력 3월부터 9월경까지 서울에서 독립운동자금 1,000여원을 수차례에 걸쳐 대동단조선총지부장(大同團朝鮮總支部長) 신덕영(申德永)에게 교부하였고 신덕영과 함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고취하는 문서를 배포하는 활동을 하였다. 또한 1920년 음 9월 서울에서 신덕영이 신종희(申鍾喜) 편에 보낸 대동단 총재 김가진(金嘉鎭) 명의의 대한독립군자금영수서(大韓獨立軍資金受領書) 2통을 교부받고 이것을 김두백(金枓白)에게 교부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으며,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다 1922년 7월 27일에 만기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大邱監獄在監人信書用紙(1921. 7. 7)
- 東亞日報(1921. 3. 6)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21.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