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경 충남 (忠南) 예산군 (禮山郡) 에 거주하는 김영진 (金瑛鎭) ·조병채 (趙炳彩) 가 북로군정서 (北路軍政署) 의 김좌진 (金佐鎭) 과 연계하여 충남 (忠南)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할 때, 노재철 (盧載喆) 등과 함께 이 계획에 찬동하여 적극 협력하기로 결의하고, 1921년 음력 3월 상순경 충남 (忠南) 보령군 (保寧郡) 청라면 (靑蘿面) 장산리 (長山里) 자택에서 임시정부 (臨時政府) 군정서 (軍政署) 및 재무서 (財務署) 명의의 도장을 제작하여 군자금 모집을 위한 문서 제작에 사용케 하고, 동월 하순경 김영진 (金瑛鎭) 등 2인과 보령군 (保寧郡) 대천면 (大川面) 화산리 (花山里) 의 황오현 (黃五顯) 집에 침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펼친 후 일경 (日警) 에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 (獄苦) 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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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김명수는 1921년 충남 보령군(保寧郡) 청라면(靑蘿面) 장산리(長山里) 자신의 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정서(軍政署) 및 재무서(財務署) 명의의 도장을 제작하여 군자금 모집을 위한 문서 작성에 사용케 하고 군자금 모집활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또한 김명수는 중국 길림에 있는 길림군정서(吉林軍政署) 독무독판(軍務督辦) 겸 총사령관(總司令官) 김좌진(金佐鎭)에게 군자금 수천원을 모아 보낼 계획이었다. 1921년 3월 김영진(金瑛鎭) 등 2인과 보령군 대천면(大川面) 화산리(花山里)의 황오현(黃五顯)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2. 9. 18)
- 東亞日報(1922. 5. 1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764~770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