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07년에 양회일(梁會一)이 주축이 되어 봉기한 전남 화순(和順)의 쌍산의소(雙山義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양회일은 1906년 음력 10월경 쌍산의소와 가까운 증동 마을에 살던 임노복을 찾아와 항일의병을 일으키는 일을 상의했다. 이때 임노복은 양회일에게 중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그가 제시한 의병의 방략이 주목된다. 의병이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첫째 인재를 얻을 것(得人), 둘째 병기를 갖출 것, 셋째 군량을 확보할 것(糧度) 등을 주장한 것이다.
그 뒤 1907년 음력 3월 양회일을 의병장으로 하여 쌍산의진이 결성되자, 그는 총무(總務)에 선임되어 선봉 임창모(林昌模), 후군(後軍) 이광선(李光善), 중군(中軍) 이중현(李中鉉) 등과 함께 의진을 이끈 핵심인물이 되었다. 이 의병은 능주(綾州)와 화순(和順) 두 곳을 함락하고 동복으로 진출하였으나 광주 도매치(都埋峙)를 넘으려던 중 패산하였다.
의진이 해산된 뒤에 재기의 기회를 노리던 그는 고광순(高光洵)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양공거·이광선·노현재 등을 보내어 그를 원조하도록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平澤林氏世譜(1948. 3)
- 綾州鄕校誌(1960) 下 27면
- 湖南節義錄(1964)
- 雙山義所(和順)의 義兵城과 武器製造所 遺址(趙東杰,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4집, 1990) 46·57면
- 和順 雙山義所와 五大山城(전남대학교 박물관·화순군, 1998) 49·51면
- 大韓帝國期 湖南義兵硏究(홍영기, 2004) 203∼205·208·216·220면
- 杏史實紀(1950) 권4, 11·20·21면
- 敬告文(1946. 8)
- 通文(1946. 11)
- 梁與林魯福倡義實記(194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