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조선총독부 급비생으로 도쿄(東京) 와세다[早稻田]대학에 유학했으나, 재학 중 일본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공산주의에 공명하고 학업을 중단하였다. 1930년 7월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在東京朝鮮留學生學友會)의 5개 순회강연반 가운데 중앙반 연사로서 전국 순회강연을 하였다.
1931년 3월부터 서울에 체류하던 중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 후 한국인과 중국인 간의 갈등이 심화되자 1931년 7월 서울에서 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中央基督敎靑年會學校) 학생인 김만유(金萬有)·홍병모(洪炳模) 등과 함께 먼저 대중 선동 단계로 ‘학생제네스트’라는 동맹협의회를 기획하고, 혁명촉진의 방법으로 격문을 배포하여 학생제네스트를 감행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였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1931년 7월 6일 김병선(金炳璇)의 하숙집에서 만보산사건이 조선총독부의 실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리는 격문 약 2,000매를 인쇄하였다. 또 7월 8일 홍병모에게 유영경(柳榮京)을 소개해 홍병모를 지도·원조하였다. 그날 밤 10시경부터 휘문고보·여자고보는 이동재(李銅材), 동덕여고보·청년회학관은 홍병모, 고등예비실업전수는 김만유 등에게 분담해 격문을 배포하게 하였다. 그리고 유영경은 경성 제2공립고등보통학교에 격문을 배포하게 하는 등 서울의 각 학교에 배포한 후 동맹휴교를 일으키려다가 체포당했다.
격문은 ‘전조선 혁명적 학생들에게 격함’이라 제목하고 “강포한 일본제국주의 학대 압박의 잔혹한 발밑에서 유린되어 신음하는 전 조선 피압박 대중은 현재 저놈들의 강도적 식민지 반식민지 침략정책의 예리한 창끝에 찔려 학살되고 있는 상황을 보라. 이번 만보산 농민학살 구축사건의 진상을, 저놈들은 조선농민의 만주 이주를 이용하여 만주에 있는 조선인 옹호의 미명 하에 가련한 농민의 피로써 만주·몽고의 권리를 강탈하려 하고 있다. 우리의 적은 일본제국주의 및 민중을 착취 압박하는 중국 군벌이지 중국 민중은 아니다. 전 조선혁명적 학생제군, 전투적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 함흥의 동지들과 굳게 약속하여 학생 휴학과 대중적 시위로써 강도적 일본제국주의와 싸울 대중과 제군 8월 1일은 세계 피압박 대중의 세계 제국주의의 아성에 육박하는 반제투쟁일이다. 우리는 이날을 앞에 두고 노동농민과 시민대중과의 굳은 단결로써 결정적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 운운 기재하고 또 말미에 “제국주의의 만주침략정책 절대반대, 조선 및 만주주둔 일본군대 즉시 철퇴,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고 민족해방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조선·일본·중국의 피압박 무산대중은 일치단결하여 제국주의를 타도하라. 소비에트 동맹과 중국혁명을 사수하라”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체포된 인원은 총 17명으로 이 중에서 6명만이 소위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며 최금경은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32. 9. 19)
- 朝鮮日報(1930. 7. 13)
- 東亞日報(1932. 6. 18·7. 19)
- 左翼朝鮮人 姜壽求의 動靜에 관한 건(京東警高秘 제352호, 1933. 2. 24), 思想에 關한 情報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濟州抗日獨立運動史(濟州道) 921·924면
- 萬寶山 事件에 關한 檄文撒布 犯人 檢擧 事件의 槪要(1934. 3), 昭和9年3月治安情況
- 萬寶山 事件에 關한 檄文撒布者 檢擧의 件(京鍾警高秘 제6068호의 2, 1932. 6. 6), 思想에 관한 情報綴(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