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의령의 3.1만세시위는 구여순이 최정학(崔正學)·이우식·김봉연과 함께 정용식의 병원에서 3월 14일 의령읍 장날에 만세시위를 하기로 하였다. 3월 14일 오후 1시 구여순은 군중들에게 열띤 호소를 하고, 남인섭은 나라 없는 백성의 서러움을 눈물로 호소하면서 군중들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의령읍 의거의 주동 인물 최정학은 동지를 규합하기 위해 부림면 신반리까지 가서 정주성(鄭周成)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정주성은 곧 황항이·최한규(崔翰圭)·장용환(張容煥)과 함께 3월 15일 신반리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준비를 서둘렀다. 이들 주동 인물들은 인근 각지로 비밀히 많은 동지를 포섭하였고 또 태극기도 많이 만들었다.
3월 15일 정오 의령읍 제2차 의거와 때를 같이하여 봉기하기 위해 주동 인물들은 준비된 태극기를 품에 안고 신반리 장터로 잠입하였다. 정오가 되자 많은 장꾼이 모여 들었다. 주동 인물들은 장터 복판에서 재빨리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준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모인 장꾼은 일제히 여기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당황한 일본 경찰은 황급히 출동하여 총검을 휘두르면서 군중을 탄압하여 해산시킨 후 주동 인물을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황항이는 3월 15일 부림면 신반리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9월 26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3권 312~313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287~2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