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서산군 대호지면(大湖芝面)과 정미면(貞美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다.
1919년 2월 하순경 고종의 국장을 참례하기 위해 남주원(南柱元)·남상락(南相洛)·이대하(李大夏) 등이 상경해 서울의 독립운동을 견문하고 귀가했다. 이를 기점으로 충청남도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3월 26일부터 면사무소 소사 송재만(宋在萬), 면서기 민재봉(閔載鳳) 등이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이들은 4월 2일 ‘도로 보수 가로수 정리의 건’의 면장 공문을 작성해 4월 3일 8개 마을에 전달했다.
4월 4일 아침 면민 약 400~500명이 조금리(調琴里) 면사무소 앞에 집합했다. 면장 이인정(李寅正)이 면민들에게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모이게 한 것이다”라는 등의 독립 연설에 이어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에 면민들도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연호했다. 송재만은 태극기를 김순천(金順天)에게 건네주어 군중들의 선두에 서게 하고, 애국가를 직접 군중들에게 1매씩 교부했다. 이어 약 7km 정도 떨어진 정미면 천의시장(天宜市場)으로 향했다.
장정리(長井里)의 정상봉(鄭相鳳)은 정재기(鄭在麒)·김봉국(金鳳國)·김찬용(金贊用)·남정혁(南廷爀)·유동렬(柳東烈) 등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이들이 오전 11시경 쯤 천의시장에 도착했을 때 군중은 1,000명에 이르렀다. 군중들은 천의시장·천의경찰관주재소·정미면사무소 등으로 진출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처럼 정상봉은 대호지면·정미면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소요·보안법 위반’ 혐의로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5월 21일 ‘증거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19. 11. 17, 12. 24, 1920. 10. 22)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국가기록원)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14, 11. 19)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독립운동에 관한 건(제38호)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7)(독립운동에 관한 건 제39보, 1919. 4. 6)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1)(조선소요사건일람표에 관한 건, 1919. 10. 2)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54~15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