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895년 전국적으로 을미의병이 불길 번지듯 일어난 뒤, 1896년에 이르러 경북 안동(安東)·청송(靑松)·영양(英陽)의진이 일어나 영덕에 이르자 그는 향천(鄕薦)에 의하여 경북 영덕지역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부르짖으며 의병을 모집하던 그는 5월경 남정면(南亭面) 부경리(阜境里)에서 남쪽 방면으로 침입한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퇴각하였다.
후일을 도모하였으나 첩자의 밀고로 지품면(知品面) 신안리(新安里)에서 몸을 숨겼다가, 용모가 비슷한 삼종질 신태홍(申泰洪)이 연행되어 가자, 스스로 나아가 내가 의병장이라 밝히고 신태홍을 석방시킨 후 일본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다가 8월에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義兵將淸軒申運錫公殉國紀念碑文(1979. 3. 1)
- 平山申氏判事公派譜 1권(2002) 1041면
- 救國倡義錄(영덕군, 1990) 312∼313면
- 盈寧勝覽(영덕향교, 1935) 권3
- 平山申氏寧海派世譜 乙編 下(1937) 4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권 613면
- 盈德郡誌(盈德郡, 1981) 612면
- 盈德文化(영덕문화원, 2000) 제11권 390면
- 盈德의 獨立運動史(金喜坤 外, 2003) 78∼81면
- 申運錫大將 墓碑銘(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