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26일 오후 5시경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송산면(松山面) 사강리(沙江里, 현 화성시)에서 홍면(洪冕, 일명 洪冕玉) 등 시위군중이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는 이날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고, 이틀 뒤인 28일 사강 장날 재차 만세시위가 벌어지자, 그는 다시 다수의 동지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때 수원경찰서 순사부장 노구치[野口廣三]가 출동하여 시위군중에게 해산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시위군중이 해산하지 않자 순사부장은 주도자인 홍면 외 2명을 체포하여 앉혀두었다. 오후 3시경, 앉아있던 홍면이 갑자기 일어나 만세를 부르자, 순사부장은 홍면을 향하여 권총을 발사하였다. 탄환은 홍면의 등에 명중하였는데, 이에 격분한 홍면은 그에게 돌진하며 군중을 향하여 죽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홍면의 동생인 홍준옥(洪埈玉)과 문상익(文相翊)·왕광연(王光演) 등이 격노하여 순사부장에게 달려들었고, 겁에 질린 순사부장은 자전거를 타고 남양(南陽) 방면으로 도망하였다.
당시 송산면사무소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던 군중들은 순사부장을 추격하여 동리 동쪽 끝에 있는 사강주재소 부근 도로에서 그를 포위하였다. 이때 분노한 군중들은 순사부장에게 돌을 던져 땅바닥에 넘어뜨린 뒤 곤봉으로 그를 가격하여 순사부장은 현장에서 뇌진탕과 골절로 즉사하였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만세시위 참가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다. 일본 헌병과 경찰은 민가를 닥치는 대로 불지르고 주민들을 연행하였다. 홍대우의 집은 서신면 전곡리 400번지에 있었는데, 일경은 그의 집에 들이닥쳐 집을 불지르고 자택 인근에서 사격을 가하여 그는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三·一獨立運動紀念碑(서신면, 1979)
- 華城 西新地域史硏究(鄭樹億, 수원대 석사학위논문, 2003) 28∼2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165∼167면
- 現代史資料(姜德相, 1971) 제26권 326면
- 화성지역 3·1운동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화성시, 2003) 88·1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