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4월 4∼5일 울산군(蔚山郡) 하상면(下廂面) 병영리(兵營里)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 곳은 조선시대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영(慶尙左道兵馬節度使營)이 있던 곳으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지자 청년회 간부인 양석룡(楊錫龍)·이현우(李鉉禹) 등은 서리(西里)에 있는 박영하(朴永夏)의 집에서 만나 4월 4일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태극기를 제작하고 ‘구대한국(舊大韓國) 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라고 대서특필한 큰 깃발을 만드는 등 사전준비를 진행하였다.
4월 4일 오전 9시경 청년회원들은 속속 일신학교(후에 병영초등학교)로 집결하였다. 이들은 양석룡이 선두에서 큰 깃발을 세우자, 모두 태극기를 꺼내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에 들어갔다.
이때 경찰관주재소의 연락을 받고 울산경찰서에서 일본 경찰과 군인이 출동하였다. 이들은 양석룡을 구타하며 깃발을 빼앗고 선두에서 지휘하던 주도자를 검거하였다.
일경의 무력진압으로 해산한 이문조(李文祚) 등은 김세진(金世鎭)의 집으로 피신하여 다음날 다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이들은 4월 5일 오후 3시경 일신학교 부근에 다시 모여 주재소로 시위행진을 벌였다. 시위대는 점차 늘어났고, 주재소 앞에서 울산에서 지원 나온 일본 군경과 대치하였다. 시위군중은 전날 연행해 간 주도자 석방을 요구하며 일본 군경과 육박전을 벌이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때 일제가 군중에게 발포를 감행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최원득은 이날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4월 23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受刑人名標 廢棄目錄(蔚山光域市 中區)
- 3·1運動實錄(李龍洛, 1969) 627∼63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204∼207면
- 正史울산3·1운동(이순걸) 58·74·7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