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빈농 가정 출신으로 1922년 3월 삼천포공립보통학교(三千浦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23년 10월 일본에 도항하여 고베[神戶] 시내 각 지역의 공장직공을 전전하다 1937년 4월 일본에서 귀환하였다.
그 후 삼천포공립보통학교 6학년 재학 당시 가입·활동하던 용산독서회(龍山讀書會) 활동을 재개하였는데, 이때 정종주(鄭從柱)·박인욱(朴仁煜) 등으로부터 자본주의 모순에 대해 듣고 이를 다시 김낙현(金洛顯) 등 청소년 및 농민들에게 항일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는 삼천포적색노동조합사건(三千浦赤色勞動組合事件)에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939년 8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39. 5. 9·8. 26)
- 泗川市史(사천시사편찬위원회, 2003) 하권 745면
- 判決文(釜山地方法院 晋州支廳, 1939.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