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삼천포적색농민조합에 가입하여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5년 말 일본 도쿄[東京]에서 귀국한 양호원(梁鎬元)으로부터 한국 노동자·농민의 피폐 원인이 일제의 압제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농민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후 1936년 1월부터 10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양호원과 교유하면서 그로부터 농민운동에 관한 지도를 받았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농촌에 진출하여 농민으로서 농촌진흥에 노력하고, 농촌의 지도적 위치를 확보할 것, 농촌진흥회 간부를 동지로 확보할 것, 농촌 자녀를 대상으로 한 야학운동을 전개할 것 등이었다.
이러한 농민운동에 대한 교양을 토대로 1937년 5월 정성기(鄭聖基)와 함께 농촌계몽운동의 방향을 토의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을 논의하였다. 결과 무산농민의 단결을 유도하고 사회혁명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 야학을 열고 독서지도를 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로 인해 1938년 1월 6일 일경에 체포되어 1939년 8월 30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東亞日報(1939 9. 3)
- 日帝下社會運動史資料叢書(한국역사연구회, 1999) 제12권, 238∼2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