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대구농림학교(大邱農林學校)에 재학 중 동급생들에게 민족적 음악과 한글 사용을 권장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는 가운데 그는 음악으로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1940년 11월경 항일민족의식을 함양하는 노래를 지어 가르쳤다. 그리고 1941년 4월에는 일본어 상용에 반대하면서 학생들에게 한글 습득을 권유하는 한편 한글소설 강독모임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해 갔다.
1942년 8월 이 일이 발각되면서 그는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43. 8. 30)
- 名籍表(大邱刑務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