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박순영은 1931년 11월 25일 안희탁(安禧鐸)·임철호(林喆鎬)·박종암(朴鍾岩)·박아지(朴阿只) 등과 함께 한국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남원청년동맹 운봉지부를 재조직하였다. 남원청년동맹은 1927년 8월 12일 결성되었고, 운봉지부는 이듬해에 결성되었다. 운봉지부는 남원 형평사(衡平社)와 운봉 권농회(勸農會)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면서 1929년 3월 13일에 열린 예정이었던 정기대회가 관할 주재소로부터 금지 명령이 내려지는 등 제대로 활동을 못하게 되자, 이때 재조직하려고 했던 것이다. 박순영은 재조직된 운봉지부에서 농민부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소작료 불납운동과 강제 부역동원을 반대하였다.
운봉지부는 표면적으로 ‘운봉단발회(雲峰斷髮會)’를 결성, 일반인에게 단발의 필요함을 선전하는 한편, 이발업까지 경영하여 이발요금을 운동자금으로 활용하였다. 이 자금으로 각종 사회과학 서적들을 구입하고, 이를 통해 신사상을 고취하였으며 운동자 양성에 주력하였다. 이 사건(속칭 ‘운봉단발회 비사사건’)으로 박순영은 체포되어 1933년 4월 1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 70일 통산) 집행유예 3년을 받기까지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33. 4. 15)
- 朝鮮中央日報(1933. 4. 17)
- 中外日報(1929. 3. 21)
- 判決文(全州地方法院:1933.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