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신간회(新幹會)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1927년 신간회 남원지회(南原支會) 설립에 앞장 섰으며, 남원청년동맹(南原靑年同盟) 부위원장, 1928년 남원노동조합(南原勞動組合) 쟁의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대중운동을 통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그는 대중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통해 식민지 사회의 모순을 깊이 자각하여 사회주의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해갔다. 1931년 2월 신수암(申守岩) 등과 함께 적색농민조합(赤色農民組合)을 조직하여 남원지역 책임을 맡았으며, 소작료 감하운동과 지세지주부담 등을 결의한 후 농민교양 문제와 동지 규합에 힘을 쏟았다.
1932년 고용계(雇傭契)를 조직하고, 남원읍(南原邑) 죽항리(竹巷里) 김현준(金絃濬)의 집에서 고용인들을 모아 놓고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노동임금 인상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를 사용자측이 거부하면 동맹파업을 결행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던 중 1933년 일경에 체포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27. 10. 10, 1932. 7. 14, 1933. 2. 20·12. 1, 1934. 10. 11)
- 朝鮮日報(1929. 2. 17, 1933. 12 14, 1934. 8. 10)
- 判決文(全州地方法院, 1934. 10. 15)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35. 2. 14)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566면, 제11권 15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