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중국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의 국내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음력 7월경 서울 창성동(昌成洞)에서 임시정부로부터 밀파된 요원 정상섭(鄭祥燮)을 만나 군자금 모집방법을 협의하였다. 그 결과 충남 논산(論山)으로 내려가 그 곳에 있던 윤교병(尹喬炳)과 함께 군자금 모집방안을 상의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논산군 노성면(魯城面) 병사리(丙舍里)의 윤교병과 합류한 뒤 군자금 모집에 착수하였다.
1919년 음력 11월경 윤교병과 함께 논산군 논산면에 거주하는 윤일병(尹一炳)으로부터 100원을 모금하였고, 1920년 3·4월에도 2회에 걸쳐 역시 윤일병으로부터 260원을 모금하였다. 1920년 음력 4·5월경에는 윤교병과 함께 논산군 노성면(魯城面) 죽촌리(竹村里) 거주 윤임중(尹任重)으로부터 350원을 모금하였다. 이어 같은 해 음력 6월경 윤교병과 함께 경북 봉화군(奉化郡) 법전면(法田面) 척곡리(尺谷里)의 강창문(姜聞昌)을 찾아가 이시영(李始榮)이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독립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사실을 알리고 군자금을 요청하여 그로부터 40원을 모금하였다. 같은 해 7월경에는 윤교병과 함께 충남 보령군(保寧郡) 미산면(嵋山面) 용수리(龍水里)의 이시우(李是雨)로부터 40원을 모금하는 등 1919년 말부터 1920년 7월까지 전후 6회에 걸쳐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1921년 10월 28일 소위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36집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21.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