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41년 2월 1일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 재학 중 유흥식(柳興植)의 방에서 임굉(林宏)의 권유로 학우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연구회(硏究會)’에 참여하였다.
연구회는 1941년 1월 23일 이무영(李茂榮)의 방에서 피고 장세파(張世播)·이태길(李泰吉)·최낙철(崔洛哲) 등이 처음 시작한 것으로, ‘현하 긴박한 세계정세는 불원 장래 필연 조선독립의 실현을 볼 것이요 이제야 그 호기의 도래 목전에 임하였으므로 오인은 차에 준비하게끔 각자의 가장 득의라고 할 학술을 전심 연구하여 실력을 양성하고 사도에 있어서 조선의 최고 권위자가 되어 조선독립을 위하여 협력 매진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하였다.
이들은 겉으로는 학술 연구를 표방하였으나, 이면에는 민족의식을 앙양하고 실력을 양성하여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하였다. 또한 운영방침으로는 ① 회원은 비밀을 엄수할 것 ② 회원은 10일째마다 회동하여 각자 담당 부문의 연구사항을 발표할 것 ③ 각 부문의 책임자는 그 부문을 운영하고 하급생을 지도 교양하여 이를 동지로 획득하도록 노력할 것 등을 결정하였다.
이들은 동년 2월 1일부터 3월 17일까지 전후 6회에 걸쳐 송림(松林) 등에서 동 결사원인 장세파 등과 회동하여 각자 동 사범학교 졸업 후 훈도로 봉직 후는 조선 아동에 대한 지도에 중점을 두고 수재교육을 실시하여 조선 독립시 지도적 인물이 되게 하며 각자 수재 교육의 경과상황을 매월 1회 사무원에 보고하는 등의 사항에 관해 협의하였다.
윤영석은 물리부(物理部) 책임을 맡아 조국 독립을 위해 실력을 양성할 것과 장래 교사로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인재를 양성할 것 등을 협의하였다.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졸업 후 예천군 은풍(殷豊)공립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943년 11월 30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기까지 1년 5개월 여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豫審終結決定書(大田地方法院, 1943. 2. 8)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권 801∼82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770∼776면
- 대구사범항일학생사건자료집(동지회, 1984) 27∼4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