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일제의 강제징병 거부 투쟁을 전개하였다. 1943년 9월 일본 교토[京都]의 일본대학 전문부 경제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였으며, 평소 일제의 패망과 한국의 독립을 염원하였다. 1944년 12월에는 충남 예산군(禮山郡) 예산읍(禮山邑)에 살던 친구인 금구광택(金龜光澤, 창씨명)이 징병으로 끌려가게 되었을 때, 그에게 일제는 장차 패망하게 될 것이므로 입영 후 탈영하여 대일항전을 전개할 것을 설득하였다. 뒤이어 1945년 2월 1일에는 일제의 징집영장을 받게 되었다. 이때 입영 후 탈영하여 대일전을 결행하겠다고 각오하고 그 준비를 하였다. 이를 위해 중국군 등에 투항할 경우를 대비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영문 원고를 작성하였다. "중국도 역시 우리 조선 민족과 공동 운명에 있으므로 공생동고(共生同苦)의 필연적 운명에 있다. 하물며 중국에 대한 적의는 추호도 없다. 먼저 패망 직전에 있는 일본을 하루라도 빨리 전멸시켜 우리들 공동의 목적인 피압박민족의 국제적 연합을 실현시켜야 하는 고로 우리들의 운명은 이러한 역사의 필연적 경향에 따라 매진해야 한다. 소련에 대해서도 공동전선을 준비해야 하며 이의 실현까지는 시간을 요한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1945년 7월 18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45.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