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경북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門面) 죽림동(竹林洞)에 사는 권석인(權錫寅)은 광무황제의 인산에 참례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권석호(權錫虎) 등과 상의하여 3월 12일 예천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로 결의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각 동리에 배포하는 등의 만세시위 준비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이 일경에 탐지되어 실행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3월 17일 장날에 거사를 결행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는데, 이 또한 일경에 탐지되어 4월 2일로 시위 일자를 변경하였다.
4월 2일 저녁, 주도자들은 각 동리에 긴급 연락을 취하여 주민들을 용문면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집결하도록 하였다. 밤 10시경, 수백 명의 군중이 모이자 권석인 등 주도자들은 시위군중을 선도하여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이날 동리 사람들과 함께 만세운동 대열에 참여하여 면사무소 앞길을 따라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때 일본 군경이 출동하여 총검으로 군중을 강제 해산시키고 주도자들을 검거하였다.
박내창은 이날 체포되어 1919년 4월 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犯罪人名簿(龍門面)
- 大邱 慶北 抗日獨立運動史(光復會 大邱 慶北聯合支部, 1991) 17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418∼4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