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광주사범학교(光州師範學敎)에 재학중이던 1943년 3월 조규학(趙圭學)·옥대호(玉大鎬)·홍원표(洪玩杓) 등과 함께 무등독서회(無等讀書會)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무등독서회는 연합군 상륙 후 행동대원으로 봉기할 것을 굳게 다지면서 동지들을 규합하고 임시정부 연락원의 밀령을 실천하여 정통 역사관 정립과 독립쟁취에 몸을 바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동 회에서는 전주사범학교와의 연합조직을 위하여 홍완표를 대표로 선정하였으며 일본은 물러가라는 삐라와 벽보를 금남로 일대와 일본인의 집 곳곳에 부착하였다. 1943년 4월에는 임정 연락정보원과 접촉하면서 국제정세와 임시정부의 정보를 입수하는 한편 태극기를 제작하여 회원끼리 나누어 가졌다. 이어 같은 해 5월에는 광주비행장의 근로동원을 3개월간 기피하였고 혹독한 군사훈련에 반항하여 전학년 구보 데모로 투쟁하였다. 또한 6월에는 만주 봉천에 거주하는 임정 연락원 옥평호의 조국이 해방된다는 정보와 연합군 상륙과 동시에 봉기하라는 밀령을 받고 교내에서 조직적인 항일투쟁을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동료들과 함께 1944년 10월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뒤 해방을 맞아 1945년 8월 16일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지나간 옛수기(玉大鎬, 1994)
- 學籍簿(光州敎育大學校)
- 光州敎育大學 50年史(光州敎育大學校, 1988) 129∼1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