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전남 화순(和順) 사람이다. 1914년 서울에서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용상은 이낙정(李樂正) 등과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금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1914년 9월부터 11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서울 종로 김태영(金泰榮) 집에서 유병하(柳秉夏)·성기섭(成基燮)·오덕영(吳悳泳) 등 수명에게 '국권회복의 기회가 성숙되었으니 독립운동의 자금을 지원하라'고 권유하였다. 그 결과 김용상은 유병하로부터 금 80원·성기섭으로부터 금 35원·오덕영으로부터 금 22원을 모금하였다. 그리고 다른 3명으로부터 금 백십 원을 모금하였다. 그러나 모금 활동이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붙잡혔다. 이 일로 인하여 김용상은 1915년 2월 10일 경성지방법원 궐석재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후 체포되어 고초를 겪은 후 김용상은 고문의 여독으로 4년간 병석에 있다가 1919년에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晉州金氏派譜(1949)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15.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