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배천갑은 경남 창원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6, 17세경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시외 하치오지(八王子) 부립직염학교(府立織染學校) 별과 1년을 수료하고, 하치오지의 직물공장에서 약 2년간 직공으로 일하였다. 그 후 국내로 돌아와 직물공장에서 직공으로 근무한 후 25세경부터 독립하여 견직물업을 경영하였다.
1943년 11월 하순경, 경북 포항읍에 부친의 병문안을 갔을 때 읍내 두호동 소재 어업조합사무실에서 친구 김자충정(金子忠正) 등 여러 명과 이야기하면서, 당시 일본군의 피해 상황 등 시국문제에 대해 언급하였다.
1943년 10월 5일, 오전 2시경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콘론마루(崑崙丸)가 미 해군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침몰,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배천갑은 이 사건에 대해 “신문에는 300명 정도의 피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3,000명 정도일 것이며, 또 돗토리(鳥取)지방의 지진은 본래 지진이 아니고 공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되고 피해도 상당히 컸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태평양전쟁 시에 사실 및 시국에 관해 소위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를 받아 일경에 체포되었다.
1944년 1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육·해군 형법 및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執行指揮書(大邱地方法院 검사국→대구형무소장:1944. 1. 19)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