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60956
성명
한자 裵天甲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08 훈격 대통령표창
1943년 11월 하순 경북(慶北) 포항(浦項)에서 친구들과 음주 중 일본군의 피해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등 시국담(時局談)을 유포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배천갑은 경남 창원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6, 17세경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시외 하치오지(八王子) 부립직염학교(府立織染學校) 별과 1년을 수료하고, 하치오지의 직물공장에서 약 2년간 직공으로 일하였다. 그 후 국내로 돌아와 직물공장에서 직공으로 근무한 후 25세경부터 독립하여 견직물업을 경영하였다.

1943년 11월 하순경, 경북 포항읍에 부친의 병문안을 갔을 때 읍내 두호동 소재 어업조합사무실에서 친구 김자충정(金子忠正) 등 여러 명과 이야기하면서, 당시 일본군의 피해 상황 등 시국문제에 대해 언급하였다.

1943년 10월 5일, 오전 2시경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콘론마루(崑崙丸)가 미 해군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침몰,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배천갑은 이 사건에 대해 “신문에는 300명 정도의 피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3,000명 정도일 것이며, 또 돗토리(鳥取)지방의 지진은 본래 지진이 아니고 공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되고 피해도 상당히 컸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태평양전쟁 시에 사실 및 시국에 관해 소위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를 받아 일경에 체포되었다.

1944년 1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육·해군 형법 및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執行指揮書(大邱地方法院 검사국→대구형무소장:1944. 1. 19)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배천갑 - 경남 창원(昌原) -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바로가기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배천갑(관리번호:960956)
*오류 제목
*오류 유형
*오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