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밀양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3일 밀양시장에서 시작되었다. 단장면에서는 3월 20일 양산(梁山) 통도사(通度寺)의 승려 50명이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태극기와 깃발을 만들고 격문을 제작하여 인근에 배포하며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4월 4일 정오 태룡리(台龍里) 시장에 장날을 맞아 5,000여 명이 모이자 승려를 비롯한 주동자들이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대형 깃발을 세우고 나팔을 불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또한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하자 장터에 나온 군중이 호응하여 만세시위가 고조되었다. 이날 장준식도 사연리부터 태룡리 시장으로 가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태룡리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투석하여 유리창과 지붕, 벽 등을 파괴하였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급파된 밀양헌병분견대 헌병의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와 체포자가 발생하였다.
1920년 3월 18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1920년 칙령 120호에 따라 징역 2월로 변경되었다가 1927년 칙령 11호에 의해 사면되었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1920. 3. 18)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44~14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