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
양명수는 경남 창원에서 청년운동 및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향리인 경남 창원군 상남면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동년 6월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마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양명수는 1920년 12월 경성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 회관에서 개최된 조선청년회연합회에 남면청년회 부대표로 참가하였다. 조선청년연합회는 여러 청년운동단체들을 전국적 차원의 단일조직으로 규합하려는 최초의 움직임으로 장덕수(張德秀)·오상근(吳祥根)·박일병(朴一秉)·안준(安浚)·윤자영(尹滋瑛)·이영(李英)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920년 6월 28일 조선청년회연합기성회가 발기되었고, 오상근·장덕수 등 22명의 집행위원을 선출하였다. 또 1920년 12월 1일 조선청년회연합회 발기총회를 열고, 12월 2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양명수는 야학운영과 농촌계몽운동 및 독립운동을 계속해서 전개해 나갔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分冊 489∼490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476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