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일명 ‘영광체육단(靈光體育團) 사건’으로 불리던 이 사건은 1934년 4월 영광향교(靈光鄕校)에서 조직된 ‘영광체육단’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당시 서울에서 경성약학전문학교(京城藥學專門學校)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호연당약국(浩然堂藥局)을 경영하던 이을호(李乙浩)가 덴마크의 도수체조(徒手體操)를 보급한다는 구실로 영광체육단을 조직하였다. 위계후(魏啓厚) 등 다수가 참여하여, 날마다 진명사(珍明社) 마당에서 자유롭게 회합을 가지면서 서로 사기를 진작시키고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렇게 영광체육단의 민족적 활동이 활발해지자, 1937년 9월 17일 영광경찰서(靈光警察署)에서는 그 배후에 비밀결사가 있다고 판단하고 대대적인 검거에 착수하였다. 조주현(曹柱鉉)과 위계후를 지도자로 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홍종식도 체포되어, 1938년 5월 5일 조주현 등 24명과 함께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목포지청(木浦支廳) 검사분국(檢事分局)으로 송치되었다. 이 가운데 조주현 등 11명의 동지와 함께 예심에 회부되어, 1939년 2월 4일에야 예심이 종결되었다. 1940년 2월 23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0월(미결통산 300일)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2월 27일 목포형무소(木浦刑務所)에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옥당골의 전통문화(영광군, 1983) 150~151면
- 영광군지(靈光郡誌)(영광군, 1998) 303~305면
- 현암의 민족운동과 교육정신(한정훈, 공자학 19, 2010)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37. 9. 18, 1938. 5. 8)
- 조선일보(朝鮮日報)(1938.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