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3년 8월 전남지역 운동가와 일본 전협(全協)과 관련돼 활동하던 이들이 중심이 돼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를 결성했다. 이 조직은 해남, 영암, 장흥, 강진, 완도, 보성 등지에서 활동하고 적색농민,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했다. 그 관계자는 5백여 명에 달했다.
정병생은 1934년 8월 전라남도 완도군에서 전남운동협의회 재건 조직에 참여했다. 같은 해 10월 구성(九城) 농민반 책임자 12월 선전부 등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됐다.
정병생은 1941년 8월 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옥고를 치르고 1943년 6월 12일 출옥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39. 9. 15)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1941.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