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정경식은 1910년 11월 18일 경상남도(慶尙南道) 하동군(河東郡) 북천면(北川面) 사평리(砂坪里)에서 출생하였다. 부산고등보통학교를 수료했다. 그 후 일본 후쿠오카(福岡)로 건너갔다. 운전기술을 배워 운전수가 되었다. 운전수로 생활할 때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여 ‘반일 의식’을 가졌다. 1937년 7월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다. 당시 운전수를 군속(軍屬)으로 모집했으며, 그는 상하이(上海)에서 운전수로 생계를 이어갔다.
정경식은 일본으로 돌아온 후, 그가 상하이 현지에서 본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① 상하이 전황(戰況)은 일본군이 고전 중이다. 그 전사자 수가 많아서 매일 화장하지 못하고 4~5일이나 방치하고 있다. 또 장교, 병졸로 화장장이 구별된다.
② 상하이에서 적전(敵前) 상륙전으로 일본군 5,000명이 상륙하였는데, 약 2할인 1천 명이 당했다.
③ 상하이 하중(河中)에는 중국병사만이 아니라 일본병사의 사체도 다수 있어 불결하다.
④ 상하이에서 일본군은 고전하는데 일본 신문기사는 오류이다. 상하이 신문이 맞다.
⑤ 상하이 전선에서 일본병사는 식량이 부자유(不自由)하여 계속 야위고 있다.
⑥ 상하이에서 일본 비행기가 하루에 7대나 떨어진 사실이 있다.
⑦ 중국은 인구가 많아서 전쟁이 길어지면 일본이 진다. 일본이 지면 사할린(樺太), 타이페이(臺灣), 조선(朝鮮)은 적에게 돌려주어야만 한다.
⑧ 중국병사도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상하이 지방에 출정한 일본병사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⑨ 중국병사의 병기, 폭탄은 모두 외국 것으로 일본 병기보다 좋다.
정경식은 상하이에서 일본군의 전황이 매우 나쁘다는 것을 말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일본 경찰은 그를 유언비어를 유포한다고 하여 검거했던 것이다. 1937년 9월 28일 ‘육군형법(陸軍刑法) 제99조 위반’으로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11월 6일 금고(禁錮) 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조선신문(朝鮮新聞)(1929. 5. 29)
- 동아일보(東亞日報)(1932.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