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4월 12일 경북 예천군(醴泉郡) 용궁읍(龍宮邑) 학생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당시 용궁공립학교(龍宮公立學校)에 다니던 정진완(鄭鎭琬)·이구성(李九成)·김칠종(金七鍾)은 특히 항일의식이 강하여 일제의 한국강점에 분개하고 독립운동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들은 4월 8일 학교 기숙사에서 회합을 갖고, 4월 12일의 용궁읍 장날을 이용해 학생과 주민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역할을 분담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사전 준비를 진행하였다.
마침 이때 동면 무이리(武夷里)에 거주하던 대구농림학교 졸업생 이만성(李萬成) 등도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이구성은 이만성을 찾아가 공동전선을 펴기로 협의하고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런데 이같은 학생들의 거사계획을 탐지한 교사가 일본인 교장에게 밀고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일본인 교장은 곧 용궁헌병주재소에 연락하였고, 즉시 출동한 헌병들은 시위계획을 추진하고 있던 학생들을 검거하고 준비물을 압수하였다. 이로써 거사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병태도 이같은 학생들의 만세시위 계획에 찬동하여 준비 작업에 참여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용궁면 獨立運動記念碑
- 受刑人名簿(龍宮面)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419∼421면
- 三·一獨立運動實錄(三一同志會, 1985) 下 2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