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송광웅은 경북 경산(慶山)출신으로 일본에서 공부하기 위해 대판(大阪)으로 갔다. 일제는 1931년 만주침략 이후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마침내 1941년 12월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태평양과 동남아지역으로 전선을 확대함에 따라 미국·영국 등 연합국과 전쟁을 하게 되었다.
태평양전쟁 초기에는 일본군이 태평양과 동남아지역에서 승리를 거두는 듯하였지만 얼마가지 않아 곳곳에서 일본군이 계속하여 패배하였다. 이와 같이 일본군이 연합군에 의해 패전을 거듭되면서 불필요한 인명의 손상을 입는 것을 보고 일본이 반드시 패배할 것으로 확신하였다. 송광웅은 일제의 무모한 침략전쟁으로 인하여 인명이 손상되는 것을 보고 전쟁의 불필요성과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주변 인사들에게 이를 선전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는 송광웅을 이른바 ‘전시혹란(戰時惑亂)’이라는 죄명으로 붙잡아 재판에 회부하였다.
재판에 회부된 송광웅은 1944년 2월 3일 대판구재판소(大阪區裁判所)에서 징역 1년을 받고 그해 2월 9일부터 확정되어 1년간 옥고를 치루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犯罪人名簿(瓦村面事務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