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20일 통도사 승려 50명이 표충사로 와서 그곳의 승려와 비밀회합을 갖고 독립만세운동을 협의하였다. 승려 이장옥(李章玉)·이찰수(李刹修)·오학성(吳學成) 등은 4월 4일 동면(同面) 대룡리(臺龍里)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이들은 비밀리에 태극기를 만들고 각처에 연락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서둘렀다. 고예리(古禮里) 유지였던 장만식 역시 4월 3일 이상발(李尙撥) 등에게 동리(同里) 주민에게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드디어 4월 4일 대룡리 장날이 오자 주동 인물들은 군중들에게 배포할 태극기 등을 품고 시장으로 잠입하였다. 12시 30분 주동 인물들이 ‘조선독립만세’라고 대서특필한 큰 깃발을 세우자 나팔소리가 울렸다. 이를 계기로 주동 인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군중은 일제히 여기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장만식도 이날 아침 성도일(成道一)과 함께 주민들을 인솔하고 시장으로 와 독립만세를 불렀다. 수백 명의 시위군중은 곧바로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장만식은 이날의 만세시위운동을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釜山地方法院 密陽支廳:1919. 5. 1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225~227면
- 釜山·慶南三一運動史(三一同志會, 1979) 214~2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