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경(日警) : 일제 경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지용수는 전남 광주의 사회주의 사상단체 신우회(新友會), 장성의 효성단(曉星團) 등에 관계했으며, 광주협회·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고, 광주지역 학생운동을 지도하였다.
1924년 지용수는 전남 광주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 사태 해결을 위한 도민대회(道民大會)의 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동맹휴학을 하였다는 이유로 학생 4백여 명에게 무기정학을 행한 사건에 대하여, 학부형들은 학부형회와 7월 5일 학부형대회를 열고, 학교측에 원만한 해결책을 요구하였지만, 일본인 교장의 완강한 반대로 타협을 보지 못하였다. 이에 7월 19일 광주 흥학관에서 도민대회를 거행하기로 하고, 준비위원을 뽑았던 것이다.
1925년 전남 장성의 효성단과 광주의 신우회에서 개최한 사상문제 대강연회에서 강사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26년 지용수는 전남청년회연합회, 광주군 서방면(瑞坊面) 농촌진흥회에 가입했고, 9월 20일 광주 흥학관에서 광주지역 사회운동단체들의 유대와 통일을 위해 광주협회를 창립하고, 광주협회 청년부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7년 3월 지용수는 전남 광주군 광주면 서광산정 흥학관(興學館)에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광주야체이카의 일원이 되었다.
1928년 2월 11일의 기원절(紀元節, 일본건국기념일)에 광주군 서방면 두암리(斗岩里) 자신의 집에서 동지들과 현 사회제도의 개혁을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 또는 광주농업학교를 졸업하는 자는 사회에 나가서 농민 및 노동자에 대하여, 그리고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는 자는 교직에 나가 학생에게 각각 사상의 선전 보급을 꾀하고, 재학생은 일반 학생에 대하여 선전 보급을 하고 서로 연락 제휴할 것을 협의하였다.
지용수는 이 해에 전남 광주경찰서에 검거되어 1930년 12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르고 1932년 8월 9일 만기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3집 880~881면, 1624~1633면, 1654~1667면
- 林周弘 判決文(光州地方法院:1930. 10. 27)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30. 12. 22)
- 東亞日報(1924. 7, 8, 1925. 11. 28, 12. 1, 1926. 9. 23, 1930. 10. 23, 1932. 8. 10)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별집 8집 209면
- 現代史資料(姜德相, 1977) 29권 104, 138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9권 490~491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474~475면
- 林周弘 豫審終結決定(光州地方法院:1930.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