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초 일본 동경 (東京) 에서 관동자유노동조합 (關東自由勞動組合) 에 가입하여 격문을 살포하였다가 15일간 구류처분을 당하는 등 4∼5차례에 걸쳐 구류처분을 당한 바 있으며 1940년 경남 (慶南) 창원군 (昌原郡) 상남면 (上南面) 에서 서울의 경성 (京城) 콤그룹 조직원들의 지도를 받아 상남적색농민조합 (上南赤色農民組合) 을 조직하고 서울에서 파견된 여성들을 노동조합에 가입시키기 위해 지도하는 등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3년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경남 창원에서 보통학교를 중퇴한 그는 1926년 아버지를 따라 일본 오사카[大板]로 건너가 제면소(製綿所) 노동자로 일했다. 이후 일본인 사회주의자 오리메[折目茂]의 영향을 받아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도쿄[東京]로 옮겨간 뒤에는 토목하수공사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일본 공산주의운동에 참가하기도 했다. 1931년 일본 도쿄에서 관동자유노동조합(關東自由勞動組合)에 가입하여 격문을 살포하다가 15일간 구류처분을 받은 것을 포함, 여러 차례 일경의 검속을 받아 구류당하였다.
1933년 귀국한 뒤 경남 창원군(昌原郡) 상남면(上南面)에서 상남적색농민조합(上南赤色農民組合)을 조직하고 농민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경성콤그룹과 관련을 맺고 적색농민조합운동을 벌이다가 1940년 ‘경성콤그룹’이 발각될 때 연루되어 징역 3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共産主義運動史(金俊燁·金昌順, 1986) 225면
- 在所者身分帳(마삼교도소서무과)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44.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