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서울 미동보통학교(渼洞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1917년 용산(龍山) 기관차 화부 견습공으로 일하던 중, 1919년 3월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노동자들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식민지 현실의 노동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1920년 2월 조선노동문제연구회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동년 3월 김명식·오상근 등과 함께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를 조직하여 교양부 간사를 맡았다. 1922년에는 최상덕 등과 함께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조선노동공제회의 쇄신운동을 폈으며, 동년 9월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다.
조선금물직공조합·경성신문배달조합 창립을 지도했으며, 1923년 9월에는 조선노농대회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1924년 5월 조선노농총동맹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었으며, 각지의 공장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활동했다.
1927년 신간회가 결성되자, 1928년에는 신간회(新幹會) 경서(京西)지회 설립을 주도하여 간사를 맡았으며, 한편으로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책임비서 등으로 활동했다. 그는 3·1운동 기념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 지시하여 선전전단 20만장을 도쿄의 동성사에서 인쇄했는데, 우송 도중 서울우편국에서 발각되고 말았다.
1928년 7월 제4차 조선공산당이 발각되는 상황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피신했으나 도쿄에서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당한 뒤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1929년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7권 314면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534면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9권 52·55면
- 東亞日報(1924. 4. 21, 1927. 9. 9, 1929. 3. 12∼14·27·4. 1)
- 共産黨員 取調狀況에 관한 件(京鍾警高秘 第1275號의 2, 1924. 9. 25), 檢察行政事務에 關한 記錄
- 檢事勞農大會 主催團體 總會에 관한 件(京鍾警高秘 第906號, 1924. 2. 1), 檢察行政事務에 關한 記錄
- 開闢(開闢社, 1922. 11. 1) 제29호 103면
- 車今奉 豫審調書(성문출판사, 1992), 일제하사회운동사자료총서 제8권 162∼207면
- 북한 학계의 1920, 30년대 노농운동 연구(김경일, 1989) 142면
- 한국근대민족해방운동사(이재화, 1988) 101, 112∼113면
- 勞農大會 및 勞動總同盟員의 行動에 關한 件(京鍾警高秘 第906號의 4, 1924. 1. 28), 檢察行政事務에 關한 記錄
- 한국근대민중운동사(망원한국사연구실, 1989) 311면
- 고쳐쓴 한국현대사(강만길, 1994) 58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480면
- 식민지시대 서울지역 민족해방운동가 연구-차금봉을 중심으로 (김인덕, 1995)『향토서울』55, 163면
- 朝鮮勞農總同盟의 通文發送 件(京鍾警高秘 第13542號의 1, 1925. 11. 30), 檢察行政事務에 關한 記錄
- 新幹京西支會 定期幹事會 開催의 件(○○○ 第2601號, 1928. 7. 31), 檢察行政事務에 關한 記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