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2월 경남 (慶南) 진주공립농업학교 (晉州公立農業學校) 2학년에 재학 중 동맹휴학 (同盟休學) 에 연루되어 5일간 근신 (謹愼) 처분을 받았고 동년 3월 2차 동맹휴학을 계획하였다가 다시 7일간 근신처분을 받았으며 1932년 사회주의 서적을 보급하는 등의 활동으로 인해 50일간 정학 (停學) 처분을 받았고 동년 동지들과 함께 학생협의회 (學生協議會) 를 조직하고 진주농업학교 내에 독서회 (讀書會) 를 결성하여 동지 규합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8월여 (月餘) 의 옥고 (獄苦) 를 치르고 징역 1년 집행유예 (執行猶豫) 3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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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고성(固城) 사람이다.
그는 1931년 2월 경남 진주공립농업학교 2학년에 재학 중 동맹휴학에 연루되어 5일간 근신처분을 받았고 동년 3월 2차 동맹휴학을 계획하였다가 다시 7일간 근신처분을 받았다. 또한 같은 학교 학생이었던 김종항(金琮恒)과 함께 사회과학서적을 탐독하고 식민체제를 비판하는 서적을 보급하는 등의 활동으로 인해 50일간 정학처분을 받았다. 이후 송기호(宋畿鎬)와 함께 진주에서 학생협의회(學生協議會)를 조직하고 진주농업학교의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그는 진주농업학교 내에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해 사회과학서적을 윤독하며 동지규합 등의 활동을 하다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8개월의 옥고를 치렀으며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33. 6. 10, 7. 18, 8. 3)
- 朝鮮日報(1933. 8. 2)
- 思想月報(고등법원검사국, 1933. 10) 第3卷 第7號 11∼20面
- 日帝侵略下三十六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10卷 184·403面
- 學籍簿(晉州公立農業學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