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간도지역 한인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은 1927년 10월, 1928년 9월, 1930년 3월~5월 등 모두 다섯 차례의 간도공산당사건(間島共産黨事件)로 대표될 수 있다. 이 중 제2차 간도공산당사건은 1928년 9월 ml그룹의 동만도(東滿道) 간부에 대해 일제가 가한 탄압 사건을 말한다. 즉 1928년 9월 3일, 국제청년데이를 맞이한 ml그룹 동만도구역국에서는 동만청년총동맹(東滿靑年總同盟)을 내세워 용정(龍井)과 국자가(局子街) 일대에서 청년학생들을 동원한 대중시위를 조직하고 있었다. 그들은 시위를 통해 '일제 침략세력을 타도하자', '조선의 절대 독립을 이룩하자' 등의 구호를 제창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간도총영사관(間島總領事館)에서는 이들의 시위 준비 상황을 미리 탐지하고 72명의 조직원들을 체포하였다. 체포된 사람 가운데 61명이 예심(豫審)에 회부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23명이 교사(敎師)였고, 학생이 16명, 기자(記者)가 3명이었다.
김영호는 함북 명천(明川) 출신으로, 1928년 길림성(吉林省) 용정에서 동만청년총동맹의 상무서기(常務書記)로 활동하고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동만도 용정군 간부로서 근북회원(槿北會員)을 지도하다가 제2차 간도공산당 검거 사건으로 간도영사관 경찰서에 체포되었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懲役) 2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있었다. 폐병(肺病)으로 형 집행정지(執行停止) 처분을 받고 출옥하여 1931년 3월 21일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中外日報(1928. 1. 31)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2집 292면
- 東亞日報(1931. 3. 23)
- 上訴權抛棄 申立書(1931. 3. 1)
- 送達證書(京城地方法院:1928.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