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강원도 양양(襄陽) 사람이다.
1925년 3월 강원도 양양공립보통학교(襄陽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27년 1월 경성역 역부가 되어 근무 중 동년 5월 작업 중 열차에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어 9월 해고되어 귀향하였다. 1928년에 공산주의자 김필선, 1929년에 무정부주의자 김한의 지도를 받았으며, 1931년 4월 일본 동경(東京)으로 가서 '상호부조론(相互扶助論)' 등 무정부주의 출판물을 학습하기도 하였다. 1931년 8월에는 흑우연맹(黑友聯盟)에, 1932년 1월에는 아나키즘계 노동단체인 조선동흥노동동맹(朝鮮東興勞動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동년 7월 공산주의자들과의 투쟁을 위해 일본 2개 단체와 지부노동자자유연합(芝部勞動者自由聯合)을 결성하여 전협 계열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일본 아나키스트들과 공동으로 대항하였다.
1934년 1월 양일동과 홍일(洪日) 등의 요청으로 무정부주의계 흑색신문사(黑色新聞社)를 경영하면서 '흑색신문(黑色新聞社)'을 발행하여 수 차례 검거와 구류를 당하였으며, 상해(上海)의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 간부인 이달(李達), 양자추(楊子秋) 등과 연락하여 1935년 3월 양자추로부터 밀송된 백정기(白貞基), 이강훈(李康勳), 원심창(元心昌) 등의 상해 유길공사(有吉公使) 암살미수사건에 관한 기사와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운동개황(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運動槪況)' 등을 게재하였다.
1935년 3월 경 양자추로부터 투사(鬪士)의 파견을 의뢰받고 동년 7월 일본대학(日本大學) 사회과 학생 이종봉(李鍾鳳)을 상해로 파견하였고, 동년 9월 상해의 남화한인청년연맹에서 발행한 [뉴스]를 송부받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35년 10월 초순 경 자유연합신문사(自由聯合新聞社) 이등열태랑(伊藤悅太郞)의 권유로 일본무정부공산당(日本無政府共産黨)에 가입하여 동당 관동지방위원회(關東地方委員會) 식민지부(植民地部)에 소속되어 재일조선인 무정부주의계 3단체의 전선통일, 재일조선인유학생에 대한 대책, 조선내 무정부주의운동 재건, 상해동지들과의 연락, 식민지운동방침을 협의하고 당원 획득 활동을 하였다.
1935년 11월 일본무정부공산당사건에 연루되어 경시청에 붙잡힌 그는 1936년 3월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동경형사지방재판소 검사국에 송치되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기까지 근 반년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아나키즘運動史(무정부주의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278·390·410·414·415面
- 일본무정부공산당관계검거자 신상조사서(형사국 사상부, 1936)
- 判決文(東京刑事地方裁判所, 昭和思想統制史資料 1卷, 1936. 4)
- 黑色新聞(1934. 9. 20)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3輯 470面
- 在日韓人아나키즘運動硏究(김명섭, 단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116·155·169∼171·199面
- 昭和特高彈壓史 朝鮮篇 6, 136∼13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