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북 성진(城津) 사람이다.
서울 오성학교(五星學校)를 졸업하고 1913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에 입학하여 1918년에 졸업하였다. 그리고 천도교 중앙교회 강습소를 다녔다.
3·1운동 후 북간도로 망명하여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가 가담하여 활동한 이 단체는 1919년 11월 북간도의 연길(延吉)·왕청(汪淸)·화룡(和龍)의 대표들이 모여 조직하였다. 본부는 연길현 춘양향(春陽鄕)에 두었다. 주요 간부는 회장 구춘선(具春先), 부회장 서상용(徐相庸), 참사 최노륜(崔老侖)·이봉우(李鳳雨)·한상우(韓相雨)·정병호(鄭秉浩)·김규찬(金奎燦)·김병호(金秉浩)·진석오(陳錫五), 서무부장 김승국(金昇國), 재무부장 유찬희(柳讚熙), 총무·재정검사위원 김윤덕(金允德)·김치도(金致道)·박용극(朴容極) 등을 들 수 있다.
최익룡이 참여한 대한국민회는 북간도 4개현에 거주하고 있는 40만 한국인들을 기반으로 하여 조직된 단체로서 그 지회만도 80여 개소에 이르렀다. 이러한 대한국민회는 백초구(百草溝)·국자가(局子街)·용정촌(龍井村)·두도구(頭道溝) 등의 상업 지역과 주요 도시 등을 주요 거점으로 삼았다. 아울러 대다수 구성원이 기독교 신자였으므로 기독교도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 등지에 기본 조직을 갖고 있었다.
한편 대한국민회에서는 군사활동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따로 군사회를 두었는데 주요 간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사령관 안무(安武), 부관 최익룡(崔翊龍), 제1중대장 조권식(曺權植), 제2중대장 임병극(林炳極), 향관 허동규(許東奎), 김석두(金石斗), 군무위원 이원(李園)·마룡하(馬龍河)·최기학(崔起鶴)·마천룡(馬天龍) 등이었다.
최익룡은 이 대한국민회군 사령관 안무의 부관으로 활동하면서, 박생렴(朴生廉)이 일본밀정의 혐의가 있다고 하여 용정촌(龍井村) 북구(北溝)에서 5리쯤 떨어진 곳으로 끌고가서 육혈포로 총살하였다.
한편 1920년 재간북대한의민회(在墾北大韓義民會)·재간대한신민단(在墾大韓新民團)·대간대한광복단(在墾大韓光復團)·재간대한국민회(在墾大韓國民會)가 연합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귀순한다는 취지로 서약하고 북로사령부(北路司令部)를 결성하였을 때, 참모부 서기로 활동하였다. 아울러 이 당시 용정 동흥(東興)중학교 설립에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도 하였다.
1922년 봄 함북 성진으로 밀파되어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독립운동 혐의로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청진형무소에 수감중 1923년 7월 2일 탈옥하려다가 간수의 총에 맞아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죽은자의 숨결 산 자의 발길(강용권, 1996) 206·317면
- 동아일보(1922. 8. 31, 1923. 7. 28)
- 신인간(1989. 4월호) 성진교구사
- 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박환) 77·78면
- 보성전문학교 학적부
- 조선민족운동년감 116·117면
- 현대사자료(강덕상) 제28권 435·436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19·320면
- 성진시사(성진시사편찬위원회, 1993) 163면